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주 C-123 추락사고 (문단 편집) == 상세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20211128501866.jpg|width=100%]]}}}|| 사고 당시 제주신문 부장이었던 서재철이 찍은 '''유일한''' 사진.[* 1982년에 찍혔으나, 실제로는 7년 후인 1989년에 공개되었다. 당시엔 필름이 4통이나 있었지만 3통은 사장에게 반납되었고 나머지 1통에 있었던 유일한 사진 중 하나였다.] 사고 병력들은 [[전두환]]이 다음 날인 [[2월 6일]] [[제주국제공항]] 신활주로[* 해당 활주로는 현재 제주공항의 주 활주로라고 할 수 있는 07-25번(구 06-24번) 활주로이다. 이전의 제주공항에는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13-31번 활주로 하나만 있었다. 본 사고기 역시 13-31번 활주로로 착륙 예정이었다.] 건설 준공식에 참석할 예정이라 경호하기 위해 동원되었다. 이 경호를 '봉황새 1호 작전'이라고 명명하였으며, [[대한민국 육군]] 707특임대원들과 공군 C-123 [[수송기]] 세 대를 투입하였다. 그러나 출발지인 [[제15특수임무비행단|서울공항]]은 물론 도착지인 제주공항 역시 [[눈(날씨)|눈]]이 내리는 악천후로 곤란을 겪었다. 강설이 계속되어 성남 서울공항 통제국은 모든 항공기 이륙을 통제했고 [[제5공중기동비행단|제5전술공수비행단]]에서조차 이륙이 불가능하다는 보고를 2번씩이나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대답은 닥치고 이륙이었다. 결국 무리한 운항 끝에 C-123 선두기가 사라졌다. 다음날인 2월 6일 오후 4시경 [[한라산]] 해발 1,060m 지점에서 추락한 기체가 발견되었다. MBC 스트레이트의 인터뷰 내용에 의하면 최초에는 지역 경찰과 구조대들이 들어가 사고 확인과 사진 등을 찍었으며, 당시 사건현장은 항공기의 폭발로 인해 시신, 수송기 파편들이 사방에 널부러져 있는 참혹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군이 도착하였으나 군은 '''사건 축소와 은폐를 위해 사진을 모두 회수하고 경찰관들에게 평생 동안 이 일을 발설하지 말라는 강요를 했다고 한다.''' ~~~근데 이미 세상에 알려졌어.~~~ 이후 당시 인근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고 직후 시신을 마대자루에 담아 옮기는 등 사고 수습이 엉망이었다고 하는데 이후 스트레이트에서 알아낸 바에 의하면 군이 항공기 잔해와 시신들을 '''{{{#red 그대로 폭파 소각처리}}}'''했다고 한다. 참고로 수습된 시신은 유가족들의 동의 없이 제주도에서 화장된 뒤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사고 이후에는 사고지점인 [[관음사(제주)|관음사]] 주차장 옆에 충성공원을 조성하고 여기에 추모비를 세워 매년 추모행사를 연다. 전시된 당시 사고기의 잔해가 이 사고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말해준다. 그런데 2015년 이전까지 추모비에는 여전히 '대간첩침투 훈련 중 사고'라는 허위 문구가 적혀 있었다가 이후 '대통령 경호작전 중 사망'으로 바꾸고 안내판까지 세웠다. 더군다나 당시 특전사 장병들의 월급에서 강제로 각출하여 추모비를 조성했는데 추모비에는 당시 [[박희도]] 특전사령관이 지은 시가 새겨져 있었다. 그 내용도 아주 가관인데, "네가 죽음으로써, 네가 죽으면 우리가 살고 조국은 지켜지리니... 검은베레는 죽어서 영원히 산다..."고 적어놨다. 정작 박희도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 사건의 일체에 대하여 오래되어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해 같은 기종이 [[청계산]]에서 [[6월 1일]] [[청계산 C-123 추락사고|추락해 이 사고와 똑같이 육/공군 장병 53명이 순직했다.]] 또한 두 사고로부터 9년 후인 [[1991년]] [[3월 14일]]에 [[경상남도]] 밀양시에서도 수송기 추락사고가 발생해 공군 장병 5명이 순직했었는데, 공식 보도자료에서는 정확한 기종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고기종이 C-123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사고기종인 C-123은 이 세 사고 이외에도 [[1994년]] 12월 퇴역 때까지 노후화와 고장이 심각하여 수많은 정비사들을 고생시키고 당시 많은 육공군 장병들을 공포에 떨게 한 기종으로 악명이 높았다.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육군 특전사 및 공군 출신 예비역들의 제보와 증언들이 있다. 비행 중 엔진이 꺼졌다가 다시 켜고 갔다거나, 심지어 하늘에서 양쪽 프로펠러 성형엔진이 완전히 맛이 가는 바람에 제트엔진 2기로 겨우 착륙했다거나, 이 비행기가 걸리면 바로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고 하고 강하할 때만을 기다렸다는 사례도 있고[* 이 예비역은 당시 [[C-130]]은 [[그랜저]]를 타는 거 같았고 미군의 MC-130은 [[벤츠 S클래스]]를 타는 거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고가 일어났던 [[1982년]] 당시 특수훈련과 선임교관으로 복무했다는 한 예비역은 청계산 사고를 직접 수습했고 이후 [[HALO]] MAN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고공침투요원들이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한 것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이기 때문.] 고공교육생들에게 교안에도 없는 비상탈출 교육을 실시했다고 한다. [[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159&num=20136|#]] 사고 이후에도 사고 현장에서는 5cm만 파도 각종 파편들이 나온다. 사고 처리도 제대로 안 됐다는 증거이다. [[http://m.media.daum.net/m/media/society/newsview/20070313175810062|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